올해는 정말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10월이 다 되었건 만,
가을 햇살은커녕 비가 그칠 새 없이 이어지네요.
마른 땅 한 번 제대로 구경도 못 한 채,
지독한 장마처럼 내리는 가을 비에 지치다 못해
이제는 절망까지 밀려오는 날들입니다.
논 바닥은 젖어 있고, 마음은 타 들어가고
벼는 어느덧 고개를 숙이고 추수를 기다리고 있지만,
논 바닥은 여전히 질퍽입니다.
비가 그치기를, 땅이 마르기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네요.
벼는 익어 자꾸 고개가 숙여지는데
비가 계속 내리니 무거워서 점점 누우려고 합니다
콤바인이 들어 가려면 땅이 단단해야 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제대로 들어가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도 열흘 쯤 뒤에는
본격적인 추수에 들어가야 하는데,
도무지 해답이 보이지 않네요.
하늘만 바라보며 마음 졸이는 날들이 이어집니다.
### 배추 밭에 스며든 습기, 그리고 달팽이
배추 밭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가뭄이 없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가 안 나는 건 너무한 일이죠.
습기만 가득한 밭에서 자라는 배추는
하나둘 썩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뿌리가 물러 썩어버린 배추들이
속속 발견됩니다.
썩는 배추에서는 고약한 냄새까지 올라와요.
그리고 요즘 배추 밭의 주인처럼 날뛰는 녀석들?
바로 **달팽이**입니다.
습한 날씨를 좋아하는 달팽이들이
배추 이파리에 구멍을 송송 내며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이슬 맺힌 잎 위로
달팽이의 흔적이 반짝이는데,
그걸 보면 기가 막히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연의 질서라는 게
또 이렇구나 싶기도 합니다.
### 그런 날, 조카가 내민 연어 초밥 한 접시
그런 속상한 마음을 안고 있던 차에
이번 추석에 도시에 사는 시 동생 부부와
조카가 집에 들렀습니다.
서울에서 부터 장을 봐 왔다며
갑자기 **연어 초밥**을
만들어주겠다는 겁니다.
“큰어머니 요즘 힘드시죠?
제가 한번 제대로 대접해드릴게요.”
사실 남자 조카여서
라면 끓이는 정도만 할 거라고
기대는 안 했는데, 웬걸요?
능숙하게 칼질을 하더니,
도마 위에 싱싱한 연어를 두툼하게 썰어
와사비 와 연어 살이 밥 위에 가지런히 얹히고,
간장에 콕 찍어 입에 넣으니?
그동안 지쳤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연어 특유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입 안에 퍼지고,
순간 만큼은 논 밭 걱정도,
배추 걱정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 해물탕 한 그릇의 위로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조카는 해물도 푸짐하게 준비해서
직접 **해물탕**까지 끓여주었어요.
꽃게, 낙지, 조개가 푸짐하게 들어간
얼큰한 국물에 칼칼한 고추 향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마음까지 뜨끈하게 데워지는
한 그릇이었습니다.
조카가 해물탕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도시 사람들은 밥상에 올라오는 쌀이나 채소가
어떻게 길러지는지 잘 모르잖아요.
큰어머니 큰아버지가 이렇게 힘들게 농사지은 게
얼마나 귀한 건지,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 말을 듣는데, 왠지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 가을 햇살보다 따뜻한 한 끼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라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가을은
**걱정과 긴장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비가 그치기를,
해가 떠주기를 매일같이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날들 속에서
누군가 가 정성껏 만들어준 밥 한 끼는,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찬란한 가을 햇살보다 따뜻한 밥 한 그릇.
때론 그것 만으로도 다시 힘을 낼 수 있다는 걸,
올해 가을에야 알게 되었네요.